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희망의 당(2017년) (문단 편집) === 선거 결과 === [[파일:L20171024.22013007516i1.jpg]] '''[[민진당(일본)|민진당]] '리버럴 배제'[* 25일에 있었던 희망의 당 간담회에서 나온 발언들을 들어보면 정말 각 후보자가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상 심각한 역풍을 불러왔던 것으로 보인다. 고이케는 동료들을 마음에 안 든다고 짤라내는 잔인한 사람으로, 각 후보자들은 동료들을 팔아먹고 자기만 살겠다고 나온 걸로 비춰졌다고 한다. 이래서는 선거가 될리가 없다.] 발언으로 야권 통합에 실패하며 완전히 패배했다.''' 후보자를 입헌민주당보다 3배 이상 많이 냈지만 획득 의석수는 5석이나 적게 얻고, 민진당 잔류 참의원들의 지지를 얻는 데 실패했으며 48회 중의원 선거 이후 무소속 야권 의원들이 입헌민주당과 통합회파를 구성하고 희망의 당 내 리버럴, 호헌 세력이 탈당 후 입헌민주당에 합류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패배이다. 그리고 한 때 비자민 세력의 구심점 역할을 기대받으며 자민당을 위협했던 정당으로써는 리버럴 배제 발언 등으로 그간 구축했던 개혁보수의 이미지를 잃어버렸고 무시했던 [[입헌민주당(2017년)|입헌민주당]] 세력이 오히려 희망의 당을 제치고 제1야당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또한 불과 석달 전까지 도의회를 휩쓸며 고이케 대표의 지지기반으로 보였던 도쿄[* 심지어 고이케의 지역구인 [[도쿄도 제10구]]를 계승받은 최측근 인사인 와카사 마사루는 지역구에서 3위로 낙선하고 비례부활도 못했다. ]에서 1곳[* [[도쿄도 제21구]], 근데 이곳에서 당선된 [[나가시마 아키히사]] 의원이 창당초기부터 고이케지사를 서포트해왔기는 하지만 유신회 혹은 자민당 출신 혹은 (구)유신회와 민주당이 합당될때 넘어온 민진당도 아니고 "우"쪽으로 가깝게 분류되어있었다고는 하지만 순수민주당 출신의 간 나오토 前총리 계보로 분류되기도 했었던 의원이다. 즉, 사실상 완패로 볼수 있다.]을 제외하면 지역구 입후보자 전원이 전멸했고 비례대표도 입헌민주당에 6%이상 뒤지는 결과[* 당선인 부활당선 3명]가 나와 당장 앞으로의 미래를 걱정할 처지가 되었다. 총선 전 고이케 대표는 희망의 당의 공천을 받기 위해서는 개헌을 찬성해야 한다고 못박은 바 있다.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성향으로 미루어볼 때 이 개헌 찬성이라는 것이 헌법 9조(평화헌법) 개헌 찬성을 뜻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언론에서 총선 뒤 당선자들의 성향을 분석해 본 결과 [[자유선진당|당내에서 헌법 9조 개헌에 찬성하는 비율은 고작 11%에 불과했고 무려 55%가 반대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일본 개헌 이슈에서 평화헌법 개정이 차지하는 비중이 물론 높긴 하지만, 논의사항이 그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의원들뿐만 아니라 지지층 역시 상황이 비슷했는데, 총선 전 발표된 여론조사를 보면 소속 의원들 뿐만 아니라 희망의 당 지지층 역시 (입헌,공산 사민 지지층만큼은 아니지만) 대체로 평화헌법 개정에 미온적이며 아베 총리에 반감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애초에 지지층의 베이스가 기존 야당을 지지하던 유권자들이었다는 이야기. 이런 상황에서 대표가 집권당에 비해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니 지지층이 열성적으로 호응해 줄 리가 없었다. [* 희망의 당 공천 조건인 안보법제 찬성을 하는 후보자의 비율이 찬성:중립:반대 39:20:41로 팽팽했었지만 당선된 의원의 비율은 13:19:68로 압도적으로 늘어났다. 다시 말해서 지역구 현장에서는 안보법안 반대를 표명한 후보자들이 상당수 살았고 안보법안에 찬성한 후보자들은 대거 떨어졌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런 판단 착오로 인한 선거 패배의 책임이 고이케에 있다는 판단 때문인지 고이케에 대한 구심력이 완전히 사라졌다. 당내 분위기는 매우 흉흉해서 '고이케씨에게 절대로 주도권을 내주지 않겠다', '국정에 나오지 않을거면 대표 때려쳐라', '당 전체가 반 고이케 분위기로 점령되어 있는 상태다', '공주는 손 떼라. 근데 이젠 공주도 아니잖아?' 라는 과격한 발언이 나오고 있는 상황. [* 특히 의원 구성이 중의원 당선자 50명 중 창립 멤버 5명, 민진당 후보 41명, 타당 후보자 3명, 고이케 정치학원 출신 1명으로 당내 구 민진당계가 주도권을 쥐기 쉬운 상황인데다가, 이들 상당수는 입헌민주당과 합당 못해도 공조를 바라고 있는 상황이라서 고이케와는 충돌이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의원 구성상 구 민진당계가 압도적 다수이고 고이케 정치학원 출신 1명도 [[마부치 스미오|킨키 지역에서 석패율 97%가 넘는 후보]]를 제치고 32%(...)의 석패율로 당선. 이 때문에 각 당선자들은 고이케 덕에 자신이 당선되었다고 생각하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고이케에 대한 불만도 상당한 상황이다. 일본 언론에서는 구 민진당계가 고이케 컬러를 배제할려고 한다는 보도까지 내보내고 있다.[[https://www.nhk.or.jp/senkyo/database/shugiin/2017/#!hmb_0802|[링크]석패율 관련은 직접 보자.후보자 사이에서 말이 안 나올 수 없는 상황]]] 코이케의 지역기반인 도쿄에서도 츠키시 시장 이전문제 및 각종 행정 실책으로 인해 10월 14~15일 [[산케이신문]], [[후지TV]] 여론조사 결과 코이케 지지율이 9월 조사치인 66%에서 39%로 떨어졌다. 선거 과정과 이후의 일에 대해 여러가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르포하나를 소개하면, [[나가노현 제2구]]의 시모죠 미츠 당선자는 선거 과정에서 곤혹스러운 일을 겪었다. 예전이라면 당연히 지지해줬을 단체들이 호헌 문제로 희망의 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하라는 요구를 받은 것이다. 이 당선자는 희망의 당에 들어가서도 헌법을 지키겠다고 거듭 강조했지만, 결국 그 말을 못 믿은 나가노현 제2구의 호헌파들은 확실하게 호헌의 가치를 지켜줄 사민당 후보를 급하게 내세웠다. 결국 이 사람은 그동안 다져온 지지기반으로 당선은 되었지만 군소 정당 사민당 후보는 무려 4만표나 득표하며 자신의 표를 단단히 갂아먹었다. 또한 지역구에서의 자민당 비례대표는 약 51,000표를 득표했지만 후보도 내지않는 입헌민주당은 약 47,000표를 얻는 성과를 내기도 하였다. 이것이 전국 각지에서 벌어진 현상이며 각 후보자가 당 강령을 위반하면서까지 호헌을 이야기한 이유일 것이다. 또한 이렇게 호헌파의 표가 허공으로 날라가는 것을 경험한 정치인들은 고이케 때문에 당선되었다고 생각하기 어려우며, 오히려 자신의 경쟁력 때문에 당선되었다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에 고이케에 대해 비판적일 수밖에 없고 고이케의 노선에 대해 반발할 수밖에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